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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8 로마 시대순 정리

별찾아~ 2018. 5.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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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이야기 8

갈바(68~69년) 살해 인재 등재 실패

오토(69년) - 자살
P71 카이키나 매복전술로 황제군 섬멸작전시도 황제군의 장수 파울리누스 전술을 꿰둟어 봄 적을 포위함 그러나 적을 공격하라는 명령 내리지 않음 그사이 적 도망침
파울리누스는 내전이라 동포를 죽이라 명령하기 어려워 관용을 베풀었지만 아군의 입장에서 보면 적군에게 이로운 어리석은 짓으로 아군 병사들의 경멸을 사게됨
이 경우 1. 적에게 이롭지 않고 2 아군에게 이로운 형태로 관용을 베풀고 3. 아군 병사들의 경멸을 사지않는 방식으로 실행 3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결정

 

비텔리우스(69년)
오토와의 전쟁에서 승리 ->상대편 백인대장을 죽임, 병사들은 원형경기장 건설공사에 동원 <-크레모나 주민들의 모욕, 근위대 해고(오토를 도와 비텔리우스에 맞섬 (갈바를 오토의 명령으로 살했다고 해도 퇴직금도 정착지도 마련해 주지 않고 해고함)/ 카이사르 이 경우 병상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을뿐) - 원한과 분노를 품게 함

66년중반 유대반란  네로황제 진압명령 -> 케스티우스 예루살렘공격 실패 케스티우스 병사 67년봄 베스파시아누스 진압중 68년 네로자살로 예루살렘만 남겨두고 철수 휴전상태 유지 ->70년 유대반란  70년봄 티두스 총지휘로 예루살렘공격 개시
유대교도 기독교도 서로 사이가 나빠져 멀어지기 시작함.
73년 마사다(사해 서해안의 언덕요새 900여명 전원 자결)요새 함락 반란 완전히 진압.

베스파시아누스 유대반란 진압으로 황제자리 굳히기 위한 시험대로 생각
P127 도나우군단 남하 비텔리우스측 키이키나 북쪽으로 향함 포강도하를 막을 작전으로 라벤나로 향함. 그러나 도나우군단은 1차 베드리아쿰전투의 패배를 설욕하기위해 군사전략상의 예상로를 벗어나 아퀼레이아에서 포스투미아 가도를 따라 서쪽의 베로나로 향함
->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군사전략만이 최선은 아니다 사람의 심리와 그 군단의 지휘자를 알아야만 예측가능하다.

 

베스파시아누스(69~79)

P262 황제법 – 무키아누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법’을 원로원권고 형식으로 의결해줄 것 요구 상티오 추가 즉, 이법을 채택하고 서명한 이상 원로원에서 황제를 탄핵할 권리가 없다
네로가 원로원 탄핵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
P265 위험을 배제하려고 노력할수록 위험에 발목이 붙잡힐 위험도 커진다. 위험이 있으면 긴장감을 갖고 무의식중에도 궤도를 수정한다. 시대에 적응력을 기를 수 있다.
베스파시아누스 둘째아들 도미티아누스는 암살당한다.  세상에 완벽한 안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티투스((79.6.24~81.9.13)

79년 베수비오 화산폭발

 

도미티아누스(81.9.14~96.9.18)

P397 다키아족 본거지에 잡혀있는 로마 병사 석방댓가로 돈 지불  로마인들 반발 평화를 돈으로 사는것에 반발 금액 문제가 아니라 패자가 승자에게 바치는 연공 같은 느낌대문
평화란 어떤 댓가를 치르고라도 얻을 가치가 있는것일까?
미성년자 매춘 금지법
리메스 게르마니쿠스(게르마니아 방벽)
교육론탄생 – 퀸틸리아누스 엘로퀜티아(웅변, 뱐론)
1. 자기 생각을 남에게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 
2. 머릿속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생각 자체가 명료해지며 인격형성의 한 수단이된다.

P418 인간은 왠지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사람한테는 너그럽고, 고귀한 혈통이 아니고 고귀하게 자라지도 않은 사람이 강권을 휘두르면 신경질적으로 반발하는 경향이 있다.
종신재무관 – 원로원 의석 발탈권 가짐
P424 도미티아(코르불로의 막내딸)황후를 모시는 해방노예 스테파누스가 도미티아누스 암살함.
원로원 네르바를 황제로 지명 도미티아누스 기록말살형에 처함


네르바 황제(96.09.19 ~ 98.01.27)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 첫 원로원회의에서 원로원의 치외법권 인정 – 황제의 사법권에대해서만 인정
근위대 도미티아누스의 암살 주모자 밝혀지지 않자 네르바를 황제 방에 감금 주모자 색출 사형을 강력하게 요구.
97.10.27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를 입양형식으로 후계자로 지명 공통통치자로 지명
당시 트라야누스 고지게르마니아 방위군 사령관이었다.
98년 집정관에 공동취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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